산악인 고미영 언니

몇일 전에 도둑질을 했다.
신문을 훔쳤다. 나는 신문을 안 받아본다.

빌라 일층에 깔아 놓인 조선일보인데 아침에 나가며 1면에서 미영 언니 기사를 언뜻 보았고, 뒤적여 후면에 사진이 있길래.
저녁 9시 40분까지도 안가져가면 이건 구문 아니냐면서 뻔뻔하게, 종이로된 언니 사진을 갖고 싶어서 훔쳤다.

기사에는 후원사에 대한 원망의 글이 있었고
미영 언니의 지인들이 말하기를... 하면서 이렇게 적혀있었다.

"유쾌하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정말 그랬다.
20대 후반, 마구 강해지고 싶던 시절에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고 노량진 실내 암장에 가면 항상 언니가 있었다.

우린 별로 살갑게 친하진 않았다.
언니 언니 하면서 친하게 따라다니고 표현하고 그런거 해본 적이 없는지라.
하지만 그 때 언니는 분명 내 우상이었다.
아니, 그 이후로도 내 우상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저질의 지구력을 가진 내가 정말 잠깐 벽에 매달리다 손을 놓고 헉헉댈 때, 언니는 거의 한시간 내내 쉭쉭 숨을 내 뿜으며 오버행에 매달려있었다.
그런 언니의 팔과 다리 근육이나,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전향하면서 12킬로그램을 뺐다는 전설적인 스토리나, 소년같은 머리, 시원시원한 사투리 억양 섞인 말투 모든게 나를 사로잡았다. 볼 때 마다 언니는 항상 빛나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고 계산 없이, 샅됨 없이 맑고 곧은 지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언니는 벽에 매달릴 때나, 도저히 더 매달릴 수 없게 되어 내려와 웨이트를 할 때에도 찡그리고 짜증나는 듯한 표정이나 말투 한 번을 보인 적이 없었다.

선운산에선 미영 언니가 잔 물고기들을 튀겨도 주셨다.
신기했다.

그 때 선운산,

우린 냇물에 맥주캔들을 꽂아두고 하루 종일의 등반을 마치고 와서 발 담그고 마셨다.
아침을 먹고 남은 밥으론 주먹김밥을 쌌다. 미영 언니는 내 주먹밥을 항상 좋아했고 칭찬해주셨었다.
모기장을 치고 흙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니 머리 맡에 뱀이 허물을 벗어놓았다.
시원하겠거니 하고 물에 담가둔 백숙용 닭은 하루만에 온갖 곤충들이 알을 까서 구더기 더미가 되었다.
나는 거꾸로 떨어져서 종아리가 자일에 쓸렸고 2-3도 화상을 입어 나중에 죽은 살을 긁어내야했다.

갈 때 입었던 바지가 헐렁해져 내려갈 지경이었다. 턱걸이 갯수 하나가 늘어났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들끓게 하던 차가운 바위, 공기, 땀, 공포, 고통...

내가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았던 한 시절, 몹시 그립고 아련한 한 시절에 나의 우상이었던 언니를 등반을 그만 두면서 잊어버렸다. 물론 이제는 한국 최고 여성 스포츠클라이머가 아니라 아시아 최고 그리고 세계 탑 5에 드는 클라이머로, 그리고 이후 히말라야의 최고봉들을 등반하는 등반가로 살아가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버스를 타니 모니터에 언니가 나왔다.
포커스 사람...이던가...
나는 같은 영상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보았다.

언니에겐 이제 예전의 소년같이 씩씩한 아름다움에 더해 더욱 너르고 편안한 아름다움까지 있었다.
나는 영상을 보며, 언니의 말을 들으며 눈을 뗄줄을 몰랐다.

한결같이, 더욱 아름답게 사셨군요.

그 버스를 타면 볼 수 있는 언니었다.
언니를 볼 때 마다 난 말하고 있었다.

'언니는 정말 멋있어요.
항상 언니 존경해요.

그 때 그 시절에 언니와 사람들에게, 그리고 바위에게 배웠어요.
그냥 가는거라는거.
그냥 가기 위해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히 수련해야 한다거.
'

버스에서, 언니는 모니터 속에서였지만 다시 만난게 얼마되지 않는데 언니가 세상을 떠났단다.
언니 저 기억하세요? 라고 머지않아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몇일 동안, 불쑥불쑥, 북받쳐오르는 슬픔이 소나기처럼 내리고 있다.

언니가 떠나며 다른 나로 살았던 한 시절의 열망과 추억 한 덩이도 툭 떼어간 것 같다.
나도

'유쾌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언니를 생각하며.
내가 불쾌하고 안씩씩한 사람으로 살 때 언니가 운동하다가 툭툭 말을 건네며 격려해줄 것 같다.












by 마녀 | 2009/07/19 14:17 | 어느 소행성에서의 하루 | 트랙백 | 덧글(2)
환자에게는 알 권리가 있으나 그들은 환자가 아는 걸 원치 않는다

마트에 가면 영주증에 다 나온다.
두부 얼마, 쥬스 얼마.
그럴 보고 이것 저것 집어서 계산대에 간 후 찍혀나온 액수를 보고 먼저 허걱;;; 놀란 뒤 나중에 찬찬히 볼 때도 있다. 아, 치즈가 꽤 비싸군.

대학병원에 가면 진료비 영수증을 준다.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 가서도 받을 수 없는 특대 사이즈에 종이도 왠만한 A4지 보다 훨씬 두껍고, 표시된 항목은 수입가지인데 검사 항목에서 두부를 샀는지 쥬스를 샀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수십종의 혈액검사를 받고도 영수증엔 '검사료 xx원으로 뭉뚱그려져 표기될 뿐이다. 의사는 말한다. 검사실에서 받는 검사는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두 가지다.

물론, 검사 종류를 알아내서 '이 검사는 다시 매대로 가져다 놓고싶네요.' '다음에는 이 검사는 하지 않겠어요'라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와 그 보호자는 자신의 병을 통해, 치료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본인이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할 수도 있고 이러한 앎의 과정 자체가 자신의 상태 및 병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치유에 대한 의지를 고양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인터넷의 발달로 의학지식이라는 것이 두꺼운 영문의학원서를 가지고 독해할 수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이 이미 되어버렸다. 히스타민이란 무엇인지 항히스타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는 훨씬 많아지고 있다. 각각의 혈액검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상치가 나타나면 어떤 것들이 의심되는지 '지식인'이 다는 몰라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한 환자는 검사 전에 마시는 장세척제가 몹시 역하다는 것을 알고 '지식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렌지 쥬스를 물고 있어라, 사탕을 혀에 발라라 등등의 자상한 선배 환자들의 커멘트를 잘 이용하여 똘똘하게 검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의료인들이 알려준 것은 물론 아니다 (병원 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때론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환자와 보호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구체적 검사 정보는 없다. 알 권리가 있다고 천명되어 있다하더라도 그 권리란 뻔뻔하게 그리고 긴장하면서 요구해야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겨우 실현될까 말까 한 권리인 것이다.

의사들이 귀하의 혈액검사는 무엇 무엇 무엇 입니라 라고 알려주면 "그 검사는 무엇 때문에, 이 검사는 무엇 때문에"라고 일일이 물어보는 환자/ 보호자가 있을까봐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물어보는 환자가 거의 없다 하더라도 환자 한 명당 5분씩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쉴틈 없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런 걸 물어보고, 그에 대해 일일히 답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건 정말 대박이다. 그로 인해 줄줄이 진료가 미루어지면 그로 인한 다른 환자의 불편을 누가 책임 질 것이냐고 할만도 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찍혀나오는 영수증에는 구체적 검사 항목이 표기되어야 한다.

by 마녀 | 2009/06/10 16:17 | Open the window | 트랙백 | 덧글(2)
다크나이트
이런게 영화다.
어줍잖게 소설 가져다 베끼느라 시간 낭비, 돈 낭비 하지 마시고.
영화는 대화부터 영화스럽게 해야하는거다.

슈퍼맨 vs 배트맨

힘은 수퍼맨이 당연 역대 짱이다.
지적 능력? 어메리컨 닌텐도 가이.

배트맨은 태생은 그냥 그럴 수 있었는데
상당히 꼬였는데 잘 풀렸다.
나름 열심히 수련했던 시절이 있었다.
바닥까지 가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할 바 없이 다크 나이트는 복잡하게 변죽올리는 대사 천지다.

스파이더맨은 한 22세.
조금 더 커야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치기가 때론 귀엽다.

내가 꼽는 그들의 계보
탐 크루즈> 제레미 아이언스> 크리스챤 베일> 휴 잭맨
 
by 마녀 | 2009/05/22 00:04 | Iceberg | 트랙백 | 덧글(0)
트와일라잇 (twilight) 책 vs 영화

<소설>


이건 내가 이제껏 읽은 가장 두꺼운 영어책이다.
영화가 나오기 전, 이야기를 하다가 뱀파이어 스토리, 영화 좋아한다고 했더니 정말 아끼는 후배가 덜컥 택배로 원서를 보냈다. '언니는 어떤 책 읽어요?' '응? 글쎄...에전엔 꽤 있었는데...지금은 이메일과 프로토콜이 내가 읽는 유일한 책이야 ㅋ''

첫 페이지를 펼쳤더니 문장이 조잡하지가 않았다. 야, 이걸 어떻게 읽으라는거냐. 단어 몰라도 그냥 본다고? 이걸 삼사일이면 읽는다고? 이것이 어딜 사기를 쳐- 이내 덮고 몇 달을 묵히다 얼마 전에 끝냈다. 가끔씩 집어 봤는데 처음엔 열페이지 보고 스스로 대견해 하고 나중엔 50페이지, 그리고 맨 마지막엔 한번에 백페이지쯤을 봤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일단 단어 몰라도 볼 수 있다는 건 한 50페이지쯤 읽었을 때 알게되었다.
생전 처음보는 형용사, 부사들이 꽤 나오는데 주인공들의 성격, 감정, 분위기 이런거 대충 파악되니 그소리가 그소리다.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

그 중 어떤 단어는 내가 추측한 그 뜻이 아니었는데 멋모르고 넘겨짚어서 이메일에 쓰다가 상대가 내게 뭔소리유 라고 한 적도 있다. 대신 그 단어는 이제 내 것이 되었다. Distract.

그 문장의 흐름, 호흡, 아기자기한 단어들 이런거 한글로 볼 때도 이렇게 느껴지려나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멋진 후배님아 고마와!
2편은 내가 사서 본다.

참, 우리 reading 모임 정말 할까?
나 시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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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고 나서 어제 영화를 보았다.
아쉬람 K의 full recovery program의 일환으로 1800원에 온디멘드 구입.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해서.

흐흑----- 보지 말 것을.
에드워드에 대한 환상이 여지없이 개판됐다.

K작가와 나는 저 에드워드로 나오는 애 턱주가리좀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씹어댔다. 그래, 차라리 재스퍼가 백배 낫지.
탐 크루즈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의 배우를 에드워드로 쓰지 못할거였으면 차라리 영화를 찍지 마시던가. 엉엉- 그분 들은 17세의 뱀파이어 연기를 하기엔 이제 너무 연로하시다. 도데체 눈에 힘주고 치켜뜨기만 하면 악마성이 번뜩이는 줄 아시나보지.

벨라, 신체적으로 빠릿빠릿하지 못한 은둔형이자 사려깊고 헌신적인 캐릭터인데 여주인공이 너무 예뻤던 탓에, 아니면 이미지 다칠까 하는 소속사의 주문 때문에, 아니면 멍청한 감독 때문에 그냥 신경질적인 까칠녀로 변해있었다. 첫 대사, 그거 아니다.

게다가 소설에서 핵심인 '우리는 무엇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이끌리는가' 라던가, 인간 최후의 딜레마인 초인간적인 능력과 불멸을 향한 갈망과 고뇌는 무엇인가 - 뱀파이어 스토리의 영우언한 화두' 라는 것들에 대해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뭐, 설득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재네 대체 왜 저러니 라는 느낌이 들게는 하지 말았어야지. 아, 또한가지 중요한 것, 뱀파이어의 사랑법, 냄새. 영상 몇 장면으로 설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야구 장면이나 제임스와의 결전 장면 따위엔 별 이견이 없다. 초보 감독도 그정도는 다 각색하고 찍고 하겠다.

어려움이 컸을거란 생각이 들긴 한다.
책에선 사실 사건이랄게 별로 없다.
벨라의 생각, 그리고 에드워드와의 대화 그냥 그게 다다.
그게 주구장창 독자를 몰입시키고, 벨라와 더불어 고민하게 하고, 수많은 질문들로 서로를 이해해 나가게 하고,  아름다움에, 냄새에 취하게 하고, 곁에 있어달라고 아이처럼 매달리게 하고, 죽음도 불사할 정도로 용감해 지게 한다.
그런 생각이, 대화가 영화엔 없다.

오싹해졌다.
아, 이런거구나.
책 안보고 영화만 보는게 이런거구나.
책 안보는 애들의 대가리 속이 이렇겠구나.
텅-.







by 마녀 | 2009/05/21 15:42 | Iceberg | 트랙백 | 덧글(0)
열다섯, 오월
시간이 좀 많다 요즘.
그러다 보니 별별 퀘퀘묵은 것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서 몇시간이고 되새김질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될 만큼 시간이 많다. 이제는 나 정말 이래도 되는거니 라고 묻지도 않는다.

나는 가라앉고 있다.
물론 아주 깊이 가라앉기엔 아직 욕심이 많다. 가라앉아도 춤은 추고 싶고 자전거도 타고 싶다.
그래서 아직은 밑바닥이 멀다.

열다섯에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토요일 학교수업을 마치면 한 달에 두번쯤은 빨래를 한 보따리 챙겨서 기차역으로 갔다.
차표가 있으면 저녁 차를 타고 없으면 밤차를 타고, 연휴라 좌석이 없으면 입석을 타기도 했다.
의자와 의자가 마주선 빈틈에 오그리고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행히 나는 충분히 작았다.
그리고 일요일날 다시 내려오는게 꽤 피곤했던 것 같았는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전에 한참동안 내 아버지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부산에 내려와서 한시간 자고 일요일에 우리와 야구를 하고 놀아주었으니까.
나는 아빠의 반의 반도 아니었다.

아주 오래 지나서는 어린 날의 내 오지랍과 죄책감에 짜증이 났다.
그건 아빠가 재밌어서 한건데 왜 그렇게 시키지도 않는 죄책감을 쓸데없이 만들었던걸까.
나 동화와 찔끔찔끔 발 담궜던 종교 탓이었다.
동화는 전족이다.

집이 망하고 또 망해, 서울에서 도망쳐 내려간 외할아버지댁 다락에서 2년, 문간방에서 1년을 살고, 그리고 더 살 수 없게되어 서울로 다시 가족들이 도망갔는데 나를 데리고 갈 형편이 못되던 것 같다. 전학이 늦게 되어서, 학기 중에 가기는 좀 그러니까.
한 학기를 그러게 살았다. 옆집 다다미 방 한켠에 나를 맡기고 가족들이 떠났고, 거기 더 있을 수 없을 땐 선생님이 소개해 준 옆반 아이네 집으로 갔고, 나중에 거기서 쫒겨나서는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가방 두개를 들고 고모집으로 갔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밤차였다. 나는 단발머리에 청자켓을 입고 있었다.
옆 자리에 앉은 오빠야가 내게 말을 걸었다.
별 시덥지 않는 말이었는데 그리고 나서,

' 1분 룰이라는게 있데. 옆에 앉은 사람에게 1분 안에 말을 걸면 그건 그 사람과 계속 말을 하게 되는거고, 1분 안에 말을 걸지 않으면 그건 절대 아닌거래'

1분이었나, 3분이었나, 아뭏든 30초나 5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삶에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사촌오빠 말고는 없었다. 물론 성당 오빠, 아빠 학원에 다니는 오빠, 이름도, 얼굴도 내게 별 상관이 없는 그런 오빠들 말고. 지금도 사실 없다.

그 오빠가 하는 말들은 참 신기했다.

'너, 사람이 침으로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뭔 소리냐.
'당연하죠, 살 수 없죠 - 배고픈데 어떻게 침만 삼키나요. 밥을 먹어야죠'

그 오빠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던거였다.
굉장히 에둘러서 설명을 했던 것 같은데 한참 후에나 알았다.
그 침이란 배고파서 침흘리는게 아니라 키스를 할 때 서로 교환하는 타액을 의미하는 거라는걸.
아놔- 참 당황스러웠다.

'왜 그걸 전공하기로 했어요?'
'거기에 내 세상이 있을 것 같아서'
아랍어과였다.

새벽까지 무슨 이야기를 참 많이 했던 것같다. 별로 잠들었던 기억이 없다.
그리고 다음 날,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그 오빠를 만나러 갔다.
무슨 핑계를 대고 엄마에게 나간다고 했는지,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가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 어제 기차타고 올 때 같이 온 오빠가 밥사준데.'
'왜?'
'군대간데'

집에서는 딸기잼 냄새가 시큼했다. 광주리에 시들고 터진 딸기가 수북했다.

우리는 흑석동에서 가까운 국립묘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뭔가 아직 듣지 못한 얘기가 많을 것 같았다.
국립묘지 앞 팔각정에서 우리는 육게장을 먹었다.
맛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걸었다. 국립묘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수양버들이 흐느적거렸다.
나는 오른 쪽에, 그 오빠는 왼쪽에.
그 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말 없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슬펐다. 이틀만 있으면 간데.
나는 하늘을 보다가 잔디밭을 보다가 그냥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빠는 왼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내 왼쪽 귓볼에 타는 듯한 느낌이 났다.
오빠가 내 귀에. 뽀뽀라고 하기에는 좀 길고 깊었다. 
아씨- 그 민망함이란. 내가 얼마나 빨개졌는지.
그에 비하면 내 첫키스란 그져 헐렁한 의식에 다름아니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곧 일어섰다.
오빠는 돌아서서 조금 뛰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는 집에 왔다.
'뭐 먹었냐?'
'육게장'
엄마가 더 이상 내게 묻지 않기 바랬고 나는 좀 아픈 척을 했던 것 같다.

월요일엔 학교를 갔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저녁에 오빠를 만났다.
용두산 공원에서.

저녁인데도 비둘기떼가 허겁지겁 먹이 주는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우리는 탑에 올라갔다.
오빠가 기념품 가게에서 갈색 자수정 목걸이를 사주었다.
그 때 삼천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걸 참 오래 가지고 있었다. 서랍에, 내 보물상자에.

그러나 어느 날 엄마가
'야, 그거 유리야'
'아냐, 수정이야'

어느 날 깨졌다.

그 목걸이를 받아든 순간부터 난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밖으로 나와서 좀 걷다가 나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더 건네었다.
카세트테이프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내게 불러주었다.
3절까지. 중간에 후렴은 좀 생략했던 것 같다.
그 코러스 깔리는 후렴까지 다 했다면 그건 휴- .
다행이다.

'끝없이 끝없이 나의 사랑 깊어지러라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리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나의 기억을 되돌려주리라
가슴에 넘치는 정의 물결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이냐....'

진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내내 울었다.

마지막 말은. '공부 열심히 해'
켁;;;;;
내가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했겠니.

다음날인가 다음다음 날인가 그는 머리를 박박 깍고 갔을 거다.

그 다음 주엔 학교에서 소풍을 갔다.
즐거운 소풍인데, 아이들은 다 웃고 있는데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찍은 한 장의 사진에 나는 이미 열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살짝 웃고 있었다. 냇가에서 친구가 내게 물을 튀겨서. 아, 나 웃고싶은 기분 아니거든.
나는 같은 청자켓을 입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줬던 것 같다.
그의 엄마가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싸늘했다. 너 누군데 군대 간 우리 아들을 찾니?

나는 전화번호도 없었고 아무 것도 주지 못했다.
그져 한대접의 눈물 뿐.

그렇게 내 한 학기가 갔다.
그 학기 말에, 친구와 세시간씩 기다렸다 야구장 맨 앞자리에 앉아 9회말 랑데뷰 홈런에 감격했을 때 쯤에야 잦아들었다.
그리곤 서울로 전학을 했다.

가끔은 전화번호부에서 오빠의 이름을 찾아보곤 했었다.
같은 이름 몇 개가 있었고 그 중에 몇 개는 전화를 걸어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끊었다. 그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

대학생이 되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오빠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약국이 있었다.
지금은 없다.
4년 동안 갈 때 보면서 마치 그 사람을 스쳐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들곤 했던 것같다.
다시 만나고 싶어? 그런 것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너무 강렬해서. 그냥 잊혀지지 않는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냥 어디에선가 살아 있을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감정기억력의 기억의 저주를 받은 것 같다.
뭐, 나만 그렇겠냐마는.

기억과 그리움이 끝내 나를 파멸시킬 것 같다.

















by 마녀 | 2009/05/21 04:50 | 어느 소행성에서의 하루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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